






버스에 올라 탄지 20분 가량 지났을까?
사람이 한두명 씩 오기 시작했다.
11명. 밀양역에서 탄 사람들은 11명 이다. 그리고 시외버스 터미널 에서 4명 정도.
총 15명 인가? 그리 많진 않군.
근데 남자 보다 여자가 많다.
과히 좋진 않다. 그만큼 편하게 지낼수 있는 사람이 적어진다는 것이니까..
어쨌든 표충사로 출발이다.
다시한번 느끼지만 밀양은 정말 천혜의 요양지다. 물좋지. 온통 산이지.
게다가 가는길 마다 보이는 관광지. (밀양은 대부분 관광지가 물놀이와 연관 되어 있다)
밀양강. 강이 저렇게 깨끗한 곳이 있다니..
매일 한강만 보다가 밀양강을 보니 오히려 낯설다.
이게 정말 강인가?
그 강에서 여기저기 수영하고 물놀이 하는 사람들. 낚시꾼들.
평화롭게 주변경치를 살피며 가고 있는데,
“빠앙~”
무슨 덤프트럭 경적소리 인지 알았다. 소리한번 크군.
우리차 (셔틀버스) 소리였다. 승용차가 옆에서 껴들었나 보다.
그러자 안내를 하시는 스님(좀 젊은 스님인듯. 나이는 내 또래쯤? ) 이 한마디 하신다.
“받아버려 저거. 받아버려”
그러자 기사아저씨 왈.
“받으면 나만 손해여..”
이게 무슨 소리지? 스님이 저런 얘길 해도 되는건가?
경건하고 자기수행에 몰두하는 수행자 치곤 농담이라도 좀 심하다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좀 지체되서 였을까.
기사분과 스님이 서두르는 기색이 역력 했다.
15:00 까진 입재식을 마쳐야 하는데, 벌써 55분 이니..
그새 또 옆에서 끼어드려고 하는 승용차.
“빠앙~~~”
하이빔까지 쏜다. 순간 밀려오는 짜증. 경적소리도 소리지만, 스님 또 한마디 하신다.
“어쭈 해보자 이거지?”
당최 이해가 안되네? 무슨 일반인도 아니고 스님이 저런 얘기를 한다는게 말이되나?
물론 계속 가다보면서 저건 스님만의 농담이란걸 깨달았지만.
농담치곤 좀 과격 하다.
드디어 재약산 입산.
기가 막히다. 입구부터 보이는게 계곡 물로 만들어진 작은 호수 라니..
애, 어른 할거 없이 수영복 입고 물놀이 를 하고 있었다.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디카에 메모리 카드를 보충하지 않아서 사진은 약 20방 밖에 못 찍는다.
준비성 없는게 어디가냐 …
입구부터 표충사 까지 걸리는 시간은 대략 20 분.
길 자체를ㄹ 계곡 따라서 만든 것 같다.
20분 내내 계곡, 물놀이 하는사람. 낚시 하는 사람 휴양지, 텐트 등이 보였으니.
게다가 저 맑은 물.
뛰어 내리고 싶다. 담그고 싶다. 온몸을.
드디어 표충사 도착.
스님이 장내 방송으로 얘기한다.
“자 여러분 드디어 표충사에 도착했습니다.”
저 스님은 나한테 찍혔다. 말투하며, 경건하지 못한 행동(스님이란 고정이미지를 확 깨버린 장본인) 등. 설마 저런 스님들만 있는건 아니겠지?
순간 밀려 오는 짜증. 그럼 템플 스테이고 뭐고 없다.
당장 짐싸고 올라가리라.
절에 들어서니 거대한 규모에 놀라고. (표충사는 1,300 년 역사를 자랑하는 절 이다)
표충사 입구중 하나인 사천왕문(四天王門)
그리고 문을 들어서니,
입구에 있는 사천왕 문 을 지키는 사천왕상
엄청난 관광객 수에 놀라고 ( 내 외국인 할거 없이 여기저기 널려(?) 있는 사람 사람들.
….아. 내가 원한건 이런게 아니었는데..
조용하고, 위엄있고, 거기에 있는것만으로 주변 정세에 존재감이 넘치는 그런 곳 이었는데.
현실과 상상의 괴리가 이리도 크다니.
어쨌든 안내에 따라 절 안쪽 으로 들어가니, 일반인 같은데 승려복(?) 같은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우리 보다 먼저 도착해서 옷갈아 입고 기다리던 템플 스테이 족(?) 들이다.
안내를 맡고 계신 보살님 의 지시에 따라 인적사항 등록하고 수련복 받고(아까 템플 스테이 족 들이 입었던 옷이다)
신발 치수에 따라 맞는 고무신 받고, 묵을 사찰을 배정 받았다.
남자들 숙소로 배정 받은 표충서원
묵을 숙소 내부 크기가 예상외로 엄청나다.
수련복으로 갈아입자. 근데 아무리 봐도 황토 찜질방 에서 입는 옷 같은..
입어보니, 사이즈가 안 맞는 것 같다.
밑은 펑퍼짐 하고, 윗도리 는 팔이 짧네? 팔 꿈치에서 조금 더 길었을까?
‘특이하네… 특이해..’
아무튼 수련복으로 갈아입고 집합장소인 영각 으로 모였다.
영각
‘엇. 꽤많네?’
약 40명 정도 되는 인원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가족끼리 온사람도 있고, 연인, 친구. 나 처럼 홀로 온 사람도 꽤 있었다.
그리고 꼬맹이들.
초롱초롱 한 눈 빛으로 모든걸 습득하듯, 뚫어 져라 쳐다보는 아이들. 재잘 재잘..
인원 파악이 끝나고 안내 하시던 보살님이 들어 오셨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여러분이 템플 스테이를 하실동안 안내 및 민원 업무를 맡은
000 입니다.”
“몇가지 간단한 예절, 규칙 등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오늘 시간이 늦어진 관계로 빨리 교육을 마치고 입재식을 해야 되거든요? 협조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사회에서 사복으로 만났으면 상당한 미인이 겠군.’
교육은 대강. 차수( 초보 수련자 들이 걷는 자세)의 설명, 예배의 방법, 각 법당을 드나들 때의 예절. 스님을 만났을 때 취하는 인사 방식 등으로 나뉘어 졌다.
교육을 마치고 입재식이 거행되는 대형법당 (설법전) 으로 이동.
절에서는 수행자들( 우린 초보 수행자들 이다) 은 차수 상태에서 남녀 따로 2열 종대로 움직여야 한다.
불편하긴 하지만, 룰은 룰이다.
왼손은 오른손 위에 가만히 포개고 배꼽위에 올려 놓는다. 그리고 시선은 약간 아래로 고정하고 소리가 안나도록 가능한 사뿐히 걷는다.
이것이 차수의 자세.
이곳이 바로 입재식 을 거행할 설법전
어떤 절에서도 가장 중요시 하는 것이 바로 ‘정숙’ 이다.
이건 수행하는 스님을 위해서건, 우리 같은 수련생 들을 위해서건 모두에게 해당되는 공통점. 일반인 들도 마찬가지.
당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어디서 본듯한 스님이 장삼을 걸치고 서있다.
이게 누구야. 나한테 찍혔던 스님이다.
‘이봐요 스님. 스님은 나한테 찍혔어요. 아무리 근엄하게 나오더라도 스님에겐 별로 신뢰가 안간 다구요’
입재식을 하는 곳은 대형 법당 이었다. 온돌바닥. 반질 반질 하니 매끄럽다.
순간 어린시절 로 돌아가 미끄럼 타고 싶은 충동이 잠깐..
왠걸. 꼬맹이들이 벌써 하고 있었다.
“꺄르르~”
“깔깔”
으.. 나도 저기에 껴들고 싶다. 그렇지만 참아야지. 난 어른이니까.
아이의 부모님이 야단을 친다.
그러자 ‘왜? 도대체 왜 하면 안돼?’ 하는 표정으로 엄마를 쳐다보는 아이들.
곧 이어 시무룩 해진다.
그리고 얼마 안가서 자기들끼리 또 재잘 재잘.
이건 템플 스테이에 참여한 아이들의 똑 같은 패턴이다. 앞으로 도 계속 반복 된다.
아이는 무언가를 시도하고, 엄마는 야단치고, 잠깐 멈추었다가 자기들 끼리 모의 작당(?) 을 하고 다시 시도하고, 엄마는 야단치고, 또 멈추고…
젊은 스님이 들어왔다.
“양말을 안신고 계신분 들이 많은데 사찰 내 에서는 양말을 신어주시기 바랍니다”
나름대로 근엄있게 한 말이었다. 적당히 저음이 섞인.
그러나 ‘스님은 나한테 찍혔다니까요. 스님말은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릴거에요’
물론 난 양말은 신고 있었지만.
곧 이어 스님들이 들어 오셨다. 한분, 두분.
총 다섯명. 음? 가운데 계신 분 에게서 무언가 포스가 느껴진다.
대빵(?) 스님 이신가?
후에 안거지만 그분은 주지스님 이었다.
역시 눈치로 먹고 살아온 30년. 척하면 척이다.
고백하자면 그때까지 여기에 온 나름대로의 소득을 못 건지고 있었다.
물론 아름다운 경치 라던가, 산 입구부터 끝까지 늘어서 있는 계곡들. 시각적인 만족 이야 벌써 한몫 단단히 챙기긴 했지만 진정으로 원한건 이게 아니었다.
2박 3일간 나를 찾아보려 왔었는데, 내면의 나를 좀 찾아보고자.
짧은 일정 안에 무언가 깨달음 을 얻을 리는 없지만, 참선도 하고 명상도 하면서 고민거리 도 좀 해결해보고. 그러려고 왔는데, 앞서 젊은스님 의 행태와 셔틀버스 기사 아저씨의 불친절함. 교통 체증. 예상외로 많은 인원..
이런 것 들 때문에 기분이 좀 저기압이 되있었다.
첫날부터 이렇다니.. 과연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돌아갈수 있을까?
“지금부터 제5기 템플스테이 입재식을 시작 하겠습니다”
젊은 스님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통하여 법당에 울려 퍼졌다.
곧이어 스님들의 소개가 있었다. 머무는 동안 반야심경, 각 법문 강의 를 해주실 00 스님.
호감 있게 생기신 분이다.
사찰안내, 산행안내 등을 맡아주실 00 스님.
그리고 큰스님. 마지막으로 아까 안내를 해주신 보살님.
물론 젊은 스님도..
“자 여러분 삼배 합시다.”
법문 강의를 맡으신 스님이 말씀 하신다.
이어져 들려오는 법당을 울려퍼지는 목탁소리. 염불소리.
‘답은 풀렸군. 그래 이거야’
여태까지 쌓여있던 불만이 한 순간에 날아가고 있었다.
이 소리. 목탁소리 와 스님의 염불 외는 소리.
곧이어 언제 그랬냐 는듯 차분해지는 심신. 목탁 소리에 맞춰 삼배를 한다.
반야심경 합창.
‘그래 이거였어. 내가 온 이유는. 다른건 다 필요 없다. 저 스님들의 네이티브 스피커로 염불 외는 소리만으로 도 충분해.’
다음으로 사명대사 박물관 관람과 표충사 사당 참배를 해야 한다.
나가자.
사명대사 四溟大師 (1544~1610) 역사 시간때 배운 것 중에 생각 나는 거라곤 전란 이후 일본에 사신으로 건너가 외교력을 펼친 끝에 3,000 여 명의 끌려간 동포를 데리고 귀국한 스님 이라는 것 정도 밖에..
‘네고시에이터 였군’
과거엔 훌륭한 스님들도 많았지… 물론 아닌 사람들도 있었지만.
표충사 박물관 전경
안내를 맡아주신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보살님. 무어라고 설명은 하시는데, 마이크 소리가 작아서 잘 안들린다.
들어가 보자.
입구에 들어가자 마자 가운데 에 놓여진 유리관 안에 목조관세음보살좌상 이 보인다
높이 51 Cm, 넓이 30Cm 이 관세음보살상(觀世音菩薩像)은 임진왜란 때 승병장인 사영대사가 진중(陣中)에서 원불(願佛)로 모셨다고 전하여지며, 강화정사(講和政使)로 일본에 갔을 때에도 모셨다고 전하여 지고 있다. 조각수법이 매우 정교하고 아름다우며 삼도가 정연하고 어깨가 낮아 조선전기의 불상양식을 잘 간직하고 있다.
사명대사가 일본에 사신으로 갔을 때 받아온 독특한 모양의 목탁. 그리고 유품들.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나와 이동한 곳이 표충사 사당.
서산대사 (휴정 休靜, 1520~1604 ) 와 기허대사 (영규 靈圭, ?~1592 ) 사명대사 의 영정을 모신 건물이다.
예배를 마치고 나오니 저녁 시간. (5:30 )
과연 저녁은 어떤 것이 나올까. 점심때 밥 2공기나 먹었는데 벌써 배고프다.
아무리 급해도 룰은 지키자. 차수의 자세로 걸어야 한다. 주변을 둘러보니 지키는 사람은 아이들 하고 몇몇 사람 밖에 없다.
드디어 저녁 공양 시간. 안내 받은 곳은 묵고 있는 동안 내내 음식을 해줄 식당(?) 이다.
들어가기도 전에 풍기는 국물 냄새. 이건 무슨 냄새더라?
잔치국수 냄새던가? 맞다 담백한 멸치 국물 냄새.
저녁 메뉴는 국수 였다.
절에서 손수 재배한 배추로 만든 김치, 나물, 손수 빚은 국수 가락, 오이, 김 등. 100% 유기농법 에 의한 순도 100% 자연산(?) 국수. 맛은 어떠냐고? 직접 먹어보지 않고는 그맛 모른다. ㅜ.ㅠ 참고로 가득 채워서 2그릇 싸그리 비웠음.
7:00 시. 저녁 예불 시간이다. 예불을 위해 도착 한곳은 표충사 대광전
대광전 전경. 모든 예불은 이곳에서 한다. 표충사 를 통틀어서 가장 숙연하고 정숙한 분위기 가 풍겨나던곳.
절에 들어가는 방법(?) 은 이렇다. 가운데 문은 절대 이용해선 안된다. 양옆에 문을 이용하되, 남자는 오른쪽 여자는 왼쪽 문으로 들어간다.
신을 벗고 오른발을 먼저 법당 안으로 들여놓고 나머지가 들어온다.
문턱은 절대 밟거나 앉아서는 안됨.
이런 규칙들은 누가 만들었을까. 오래전에 스님들이 만들었겠지? 암튼 절에 온 이상 나도 수련자 이다. 지켜야 할건 지키자.
좋아하는 목탁, 염불 소리에 맞춰 예불을 드리고 난후, 타종식 이 있었다.
2인 1조가 되어 거대한 목종 을 흔들어 종을 친다.
힘을 주어 때리는 건 줄 알았는데, 흔들었다가 가만히 놓기만 하면 된다. 너무 세게 때리면 오히려 쉽게 부서진 다는 스님의 말.
그말을 들으니 힘조절 에 신경이 쓰일수 밖에. 살며시 5번에 준비 과정 후에 목종을 놓는다.
“뎅~~”
오늘의 마지막 일과인 사찰 예절 습의 및 참선 연습 과정이 남았다.
사찰 예절을 배울게 더 있나?
다시 설법전 으로 이동.
가장 까다로운 사찰 예절 이었던 발우공양 에 대한 습의.
발우란 음식을 담는 그릇을 말한다. 스님들의 식사를 발우공양 이라함.
사람 앞에 놓여진 각자의 발우들. (보자기에 쌓여있음)
푸는 방법부터 먹기까지 다 과정이 있다. 그중에 스님이 가장 강조하는 것은 바로 ‘정숙’ 이었다. 나무 그릇인데도 불구 하고 그릇끼리 부딪히면 ‘딸그락’ 소리가 조용한 법전 안에 울려 퍼진다.
누누이 강조하는 스님의 ‘묵언수행’ 절에 있는 동안은 말을 아껴라.
말은 여러분이 사회에 있을 때 충분히 할만큼 한다. 절에 있을동안 만이라도 말을 아끼며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라.
그러는 와중에도 처음보는 발우가 신기했던지 아이들 끼리 돌려보고 엎어 도 보고 난리가 났다 옆에서. ^^
점잖게 꾸짖는 스님의 한마디.
“조용히 하거라.”
와우. 효과 만점. 아이들 엄마가 말리지 않는데도, 단번에 얌전해 지는 아이들.
아침 발우공양 에 대한 사전 습의 만 1시간 가량이 지났다.
‘뭐가 이리도 까다롭지’
겨우 밥 한끼 먹는데 이렇게 까다롭게 먹어야 되나? 외우기도 힘드네…
외우기 힘든거는 크게 포인트를 몇 개 정하여 해당 하는 포인터만 외우면 된다. 나머지 세부적인 것들은 포인터에 따라 나오기 마련.
암튼.. 드디어 습의 완료.
시간이 지체되어 예정된 취침 시간 보다 30분 가량 늦었다.
절 입구를 폐문하니 그 많던 관광객들이 한명도 보이지 않는다. 이제는 온전히 절의 시간.
스님의 시간, 우리들만 의 시간이다.
내일 새벽에 일어나 예불을 하려면 일찍 자둬야 한다. 세면 도구를 챙겨 샤워장 으로 직행.
샤워장 안엔 약 5~6 개의 샤워기 가 있었다.
나머진 일반 수도꼭지. 잽싸게 해야지.
컥. 물 온도 조절이 지 멋대로다. 이 럴바엔 아예 찬물로 하는게 낫지.
계곡 물을 끌어다 쓰는 것이기 때문에 물의 체감온도는 얼음물 처럼 차갑다.
그래도 냉, 온수 섞어서 하는 것보단 낫지.
“어푸푸~”
한명이 찬물로 하자 나머지 사람들도 찬물로 씻기 시작한다. 나중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푸푸~”
“앗! 차거~”
샤워를 마치고 숙소인 표충서원 으로 돌아와 보니, 이부자리가 다 깔려 있었다.
누구? 안내를 맡고 계신 보살님 이 하셨나.
일찌 감치 자자. 새벽에 일어나려면. 벌써 예정된 취침 시간이 한발 늦었다.
그러나 피곤해도 잠자리가 변하면 이상하게 잠이 잘 오지 않는다.
억지로 잠을 청해야지.
“일어나십시오”
딱.딱.딱….
“일어나십시오”
딱.딱.딱….
스님이 목탁 소리와 함께 기상 소리를 외치고 있었다.
응? 뭐야 벌써 새벽 3시 인가? 말도 안돼. 누운지 얼마 안되는 것 같은데..
어휴 정신없군. 다들 졸린 눈으로 이불 개고, 첫 일정인 탑돌이 와 예불을 하러 나갔다.
씻어야 하는데.
대강 씻고 모인 곳은 108 예배를 하기 위한 대광전.
스님들은 벌써 준비 다 마치고 목탁을 두드리고 계셨다.
몇몇 지각생들 때문에 매일 같이 하는 예불 시간을 늦출순 없으니, 빈 자리가 있음에도 예불을 시작했다.
바닥에 놓여 있는 방석. 예배할때 무릎을 꿇을 자리이다.
드디어 108 예배 시작. 주어진 예문 (108 예배문) 에 맞추어, 스님의 목탁소리에 맞추어 예배를 시작한다.
절을 할 때 목탁을 두드리면 일어나는 신호이다. 반대로 서서 합장을 하고 있을 때 목탁을 두드리면 절을 하라는 신호이다.
모두들 목탁 소리에 맞춰 108 예배를 하기 시작한다.
50번째 였었나? 등에 땀이 맺히기 시작하고, 다리가 아파오기 시작 했다. 그렇게 어렵게 안봤는데..벌써부터 힘들다니..
아직도 해온만큼 더 절을 해야 한다.
70개째, 이제는 일어 나는 게 좀 버겁다. 옆에 아저씨 한 분은 절할 때 팔을 아예 바닥에 대놓고 있다.
50대 중반의 한 아저씨는 예문을 지극 정성으로 외우신다. 이미 108 예배를 경험 하신 분인듯.
80개째 를 넘어서니 하나,둘씩 사람들의 예문 외는 소리가 조용해 지고 있었다. 아이들은 포기하고 엎드려 자는 애들도 있고. ^^
아닌게 아니라, 조금씩 고통이 밀려왔다. 예문 외는 소리는 목구멍 까지 올라온 신음을 참느라 읽을 엄두도 못냈다.
99개째 인가. 100개 이던가. 절을 하고 엎드린 상태에서 스님이 목탁을 쳐야 할 타이밍인데 안 치신다. 계속 엎드려 있었다.
‘살 것 같군..’
수행원 들을 위한 배려 였을까. 다음 예배 부턴 절하고 나서 약간의 텀을 두고 목탁을 두드 린다. 덕분에 우린 엎드린 자세에서 조금이나마 쉴수가 있었다.
마지막 예배. 드디어 끝났다. 마치고 쉬어야지. 절을 올리고 마지막으로 합장을 하고 반배.
다음 5분간의 휴식 시간. 화장실 가려면 지금 가야 한다.
[#IMAGE|c0025543_1785173.jpg|pds/1/200508/21/43/|mid|2048|1536|pds#]
108 배를 마치고 기념으로 한장.
5분간의 휴식시간이 끝나자 참선 시간이 주어진다. 자세부터 하나씩 스님이 가르쳐 주는데,
먼저 정좌로 앉은 다음 오른발이 밑으로 왼발을 오른발 위에 가만히 내려놓는다.
다음 손은 편한 자세로 다리 위에 올려 엄지와 검지를 이용, 반원을 만들어 연결 한다.
허리는 일직선으로 피고 고개는 약간 숙이되, 시선은 정면을 향하여..
너무나 불편한 자세. 이 자세를 어떻게 유지 하지? 20분간 참선 시간이 주어 졌다.
[#IMAGE|c0025543_17573219.jpg|pds/1/200508/21/43/|mid|640|480|pds#]
참선중 (절대 졸지 않았음....Orz)
순간 고요한 적막. 누가 먼저라 할 것 도 없이 눈을 감는다.
10분이나 지났을까. 저려오는 다리. 슬며시 눈을 떠 옆사람을 보니 멀쩡한가 보다. 미동도 않는다. 벌써 다리 풀긴 창피한데…
한번 저려오기 시작하니 걷잡을수 없이 번진다. ‘미치겠군’ 어쩔 수 없이 다리를 바꿔 앉는다. 오른발을 위로. 주변 사람들을 보니 그래도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이 꽤 있다.
참선 자세가 익숙한가?
20분의 참선 시간을 마치고 밖으로 나와 아침 체조 및 몸풀기 수행.
[#IMAGE|c0025543_1794270.jpg|pds/1/200508/21/43/|mid|1434|1075|pds#]
스님의 물구나무 시범은 사람들의 박수갈채 를 받았다
30분 정도의 아침 체조 시간을 마치고 세면 시간이 돌아왔다.(딱히 세면 시간은 없었으나 자유 시간이 주어졌으니 이때 세면)
내려가는 중에 스님들이 토깽이 보살(암컷 이란 말이냐..) 이라고 부르는 토끼 등장.
사람을 무서워 하지 않네? 가까이 가도 그냥 한걸음 물러 설뿐 일부러 도망가진 않는다.
단 숨에 사람들의 이목을 몽땅 끌어들인 토끼. 특히 아이들이 주변으로 몰려서 만지고 먹이주고 좋아 한다. ^^
[#IMAGE|c0025543_1711177.jpg|pds/1/200508/21/43/|mid|450|600|pds#]
탑돌이( 합장 자세로 둥그런 원을 만들어 탑을 돌며 예불)탑인 삼층 석탑.
드디어 준비운동(?) 을 마치고 본연의 임무이자 하루 중 제일 기대하는 시간인 식사시간.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설법전 으로 이동.
그런데. ‘이게 아닌데?’
난 실제로 절에 있는 스님과 같이 식사를 하게 될줄 알고 있었는데, 안내를 하시는 스님 외엔 우리 뿐이 없었다.
‘아~ 이런. 이건 아닌데. 실제 스님들하고 똑 같은 자세로 같은 곳에서 차별 없이 발우공양 을 하고 싶었다고!!!!!’
어쩔수 없지. 기대보단 못 하지만 배고픔이 먼저다. ㅜ.ㅠ
어제 훈련 받은 순서 대로 발우를 꺼내놓고, 바닥에 쌓는 순서대로 놓은 다음, 공양을 받는다. 받는데도 순서가 있어, 먼저 밥을 나누어 주는 스님이나 수련생이 오면 합장 한다음, 밥 그릇 에서 밥을 푼다. 다음 밥을 머리위로 올려 예를 갖춘다음, 밥 한테 합장.
뭐 이렇게 먹어야 하는 이유는 모르겟지만 일단 로마에 오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니까..
그 다음 국이 오면 국을 퍼서 가져오고, 다음 반찬. 이런식 이다.
[#IMAGE|c0025543_17151170.jpg|pds/1/200508/21/43/|mid|1577|1183|pds#]
발우공양. 공양을 다 마친 상태의 사진. 밥이 담긴 발우를 ‘어시 발우’ 라 한다. 나머지는….까먹었…
공양을 다 받고 스님의 신호( 긴 대나무 막봉 같은 걸로 손바닥을 내려치면 탁! 소리가 나는데 예상외로 제법 소리가 크다) 가 떨어지면 밥을 먹는다.
식사 시간에도 중요한 것은 ‘절대 정숙’ 이다. 후루룩 이라던가 쩝쩝 같은건 용납이 안된다.
한번에 하나씩 (어시발우 를 할땐 어시만, 반찬 발우를 들때는 반찬 만, 국물 을 떠 먹을땐 국 에만 수저 및 저분이 있어야 한다) 들고 조용히 그러나 허겁지겁 (^^) 먹는다.
음식은 남겨서는 절대 안된다. 반찬 중에 김치 쪼가리나 단무지 하나를 남겨, 그걸로 물과 같이 자신의 발우를 깨끗이 닦아야 한다.
단무지 하나를 남긴 것 외엔 게눈 감추듯이 음식을 비운 후, 얌전히 스님의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들.
“탁!탁!”
신호다.
처음에 어시 발우부터 깨끗이 닦은후, 다음 국 발우를 닦고, 그다음이 반찬 발우. 그리고 마지막 으로 닦은 김치 혹은 단무지를 먹는다. 닦을 때 쓰여진 물도 깨끗이 마신다.
마지막에 퇴수를 해 가는데 퇴수물 에는 정말 고추가루 하나라도 들어 있으면 안된다. 실제 스님들은 발우공양 시 양념가루 하나라도 남아 있으면 호되게 혼난다고 한다.
퇴수 해간 물은 아귀들이 먹는데 아귀들은 고추가루 크기의 건더기가 있어도 삼키는데 애가 있다고 한다.
‘잉? 근데 아귀가 뭐지? 생물인가?’
아무튼 교육 받은 대로 깨끗이 발우 를 닦은후 처음 왔던 거와 같이 천으로 감싸 묶는다.
아침 발우공양 을 마친 후 주지스님 과의 환담 을 위하여 영각으로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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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 앉아계신 분이 표충사 주지스님.
30분 간의 다도 및 주지스님 과의 환담을 마치고. 등산.
프로그램 에는 ‘폭포아래 참선’ 이라고 되어 있다.
등산화 로 갈아신고, 모자 및 수건을 챙기고 등산행.
나중에 또 얘기하지만 ‘반드시 또 온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경관.
재약산 은 들어보지도 못했는데, 흙 속의 진주 라는게 이럴 때 쓰이는 건가. 아니면 우리나라 명산의 기준이 어떻게 되길래.
하긴 재약산도 명산 중 에 하나긴 하지만, 재약산 의 경치는 두번 다시 잊지 못할 것 이다.
등산로 가 험난해서 사람들 눈에 띄지 않아서 였을까.
거의 원형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자태. 마침 몇일 전 까지 쏟아져 내 렸던 비 때문에 계곡 마다 물이 넘쳐 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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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약산 등산 도중 1차 휴식처 에서 찰칵. 산 전체가 이런 계곡 들로 이어져 있다. 물맛 또한 기가 막히다.
간식거리로 절에서 나누어준 오이, 초코파이, 얼음 물, 그리고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은 손으로 만든 주먹밥. 중 오이와 얼음물로 허기를 좀 채우고 다시 등산 행.
등산로 는 그리 힘들진 않았으나, 험난한 곳이 꽤 있었다.
천길 낭떠러지 옆에 올라와 있는 거대 한 바위. 그곳에 보이는 재약산 볼거리중 하나인 흑룡 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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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올라가자 시원하게 물줄기 가 떨어지는 곳이 보인다. 흑룡 폭포 위쪽 인가. 여기서 2차 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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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포참선 중(?) 인 아저씨, 아주머니. 날씨가 워낙에 좋아 온몸을 적시고도 금방 옷이 마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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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중인 스님. 이때 불교 TV 에서 템플 스테이에 관한 취재 를 나와 카메라 맨 들도 동행.
20분간 참선 할 예정이라고 했는데, 20분을 훌쩍 넘기고도, 스님 일어날 생각을 안하신다.
카메라가 있어서 일까..
덕분에 사람들이 눈을 뜨고도 계속 앉아 계시는 스님을 보자, 다시 얌전히 눈을 감는다.
와중에 그냥 대놓고 누워서 자는 사람들도 있다.
아이들은…. 뭐 애들이니까..
약 40분 정도 참선시간을 가진후, 다시 등산행이다. 산이란 일단 정상을 밟아야 하는 법.
올라가자. 인간 이진호 오늘도 걷는다.
정상에 거의 다왔을 무렵. 밧줄과 나무로 만들어진 외나무 다리 발견.
그 앞에 놓여진 층층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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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룡 폭포와 쌍벽을 이루는 층층 폭포. 몇일 전 비를 내려준 하늘에게 감사할 뿐이다. 이런 경관을 볼수 있게 되다니. 럭키!
“여러분들 배고프시죠? 여기서 점심 공양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얼마나 기다려왔던 말이냐.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도시락 에서 주먹밥을 꺼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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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엔 이렇게 생겼어도. 맛은 최고임. 무슨 참기름 같은 걸로 간을 친 것 같았는데. 암튼 원츄!
저렇게 생긴 주먹밥 2개를 한입에 먹어치우고 나서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는데.
“이제 곧 정상입니다. 그런데 오늘 미리 내려가실 분이 있죠? 기차출발 시간이 다 되신분 손 한번 들어보세요”
1명,2명….3명 뭐야 꽤 많군. 10명이 넘는 인원이 중간에 내려가야 한다.
‘산에 올라왔으면 정상은 밟아 봐야지’
아무튼 내려 간사람 들은 내려가고 나머지 사람들은 또 등산 행.
밥도 먹었겠다. 힘이 펄펄…나는게 아니고 졸립다. 눈이 감겨. 아~ 이놈의 식곤증.
얼음물 한잔 마셔야지. 후루룩
자 계속 걷자. 걸어야 한다.
드디어 정상 도착. 기념 촬영 후 하산 시작.
올라갈 땐 몰랐는데 내려가는 게 이리 힘들던가. (등산은 원래 내려가는 게 더 힘들다. 등산 매니아 이신 아버지가 했던 말.)
게다가 좁디 좁은 길. 간혹 축축히 젖어있는 진흙탕 길. 여기 저기 신경쓰면 서 발을 딛다 보니 피로가 더 해지는듯 하다.
급기야 내 또래인 젊은 사람들도 한 둘씩 쉬어가는 부류가 늘어나기 시작.
그럼에도 제일 앞에서 이끌고 계시는 스님은 아직도 팔팔 하시다. (당연한 건가..)
성큼 성큼 걷는 저 보폭. 누가 말 시키면 호흡 하나 흐트러 지지 않고 뚜렷이 말을 한다.
역시 산에 사는 산사람(?) 답군.
뭐 매일 같이 다녔을 테니 아무래도 건강할 수 밖에.
드디어 절이 보인다. 사람들 하나 둘씩 쓰러지고. 너나 할 것 없이 샤워장 으로 직행.
샤워를 마치고 각자의 숙소로 돌아가. 1박2 일 예정인 들을 위한 회향식. 에 참여 해야 한다. 시계를 보니 약 30분 정도 남았다.
아니나 다를까 한둘씩 털썩. 털썩. 코 까지 골면서 자는 사람까지.. 피곤하긴 하겠지.
애들은 아직도 쌩쌩 하다. 역시 건강해 보여서 좋군.
30분 정도 꿀맛 같은 낮잠 후 회향식이 이루어 지는 법전 에 들어서는 순간.
‘아니 이게 어케 된 일이지’
수련복을 입고 있는 사람은 나 혼자 뿐 이었다. 다들 입산 할 때의 사복 으로 갈아 입은 상태. 안내를 맡으신 보살님 에게 물어보니,
“2박 3일 예정이던 분들이 전부다 취소를 하셨어요.”
“네? 왜요?”
“글쎄요 저희도 이런 적 은 처음 인데, 산에 갔다 오신 분들이 다리를 삐고, 어디가 긁히고, 다 치신 분들이 많아서…”
“그럼 전부다 지금 내려 간대요?”
“네.”
“아니, 그럼 저 혼자 남게 돼는 건가요?”
“네. 그리고 나머지 한 가족 분들이 계신데, 그 분들은 숙소에서 자고 있느라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어요”
“혼자 해도 되나요? 사찰 체험?”
“프로그램 에 따른 일정 등 은 못 합니다. 개인 적으로 머무시 려면 그냥 쉬시는 일 밖에..”
‘허…그깟 산에 한번 올라갔다 왔다고 캔슬 이라니.. 사람들 참..’
어쩔수 없다. 프로그램 도 더 이상 불가능 하다고 하니, 이 사람들과 같이 내려가는 수 밖에. 혼자 머무 는 것도 잠깐 생각해 봤으나, 역시나 무리 였다. 아직은 좀… 두려운가.
“그럼 저도 어쩔수 없군요. 옷 갈아 입고 올께요.”
아쉬운 회향식. 일정대로 2박을 머물렀으면 더 좋았을 테지만, 1박으로 만족 하자. 그래도 많은 것을 얻었다.
앗차. 돌아가는 표를 예약을 안 했는데..어차피 밀양역 에서 입석표 를 사야 겠군.
4시간 가량 서서 갈수 있을까. 과연. 이몸으로..
밀양역 에 도착 하여 열차를 알아보니 5:19분 1좌석 남 는게 있었다.
문제는 새마을호 특실. 가격이 35,700 원. 가격이 문제냐 집까지 어떻게 서 가려고!!!
“그거 주세요”
원하진 않았지만 예정된 일정보다 줄이게 되었고. 비용도 예상보다 과다 지출 되었다.
지출내용비용집(개봉) -> 영등포역 택시비
4,700
김밥 2줄 , 생수 1
3,000
과자
1,000
시사저널 1
3,000
영등포 -> 밀양 ( 새마을 )
31,000
밀양역 -> 밀양 대학교(버스)
800
음료수
1,000
점심 (불고기 백반)
4,000
PC 방 + 음료
1,600
염주 팔찌
2,000
상행 열차표( 새마을호 특실)
3,7500
편의점 커피
1,500
피씨방
1,000
생수
500
원두커피 (기차안, 리필용)
3,000
합계93,800그래도 얻은 것이 있었기에. 뭐 밑진 장사는 아니다. ^^
나름대로 값진 경험을 하게 된 템플 스테이 였다. 1000 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곳. 종교를 떠나서 역사로 서의 가치도 한몫 단단히 하는 산 역사 교과서.
실제로 템플 스테이 참가자 중 기독교, 천주교 등의 타 교인들도 꽤 있었다.
떠나 오면서 마음속으로 다시한번 다짐했다.
‘꼭 또 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