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8월 24일 수요일

악순환의 반복.

교육도 돈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제대로 된 교육도 못받는다?

어느정도 맞는 이야기 이다. 물론 장학금 받으면서 다니는 사람도 있지 않느냐 고 묻는 사람도 있겟지만

가난한 사람이 대부분일 경우에는 어떻게 되는가. 치열한 경쟁을 벌일수 밖에 없고 경쟁을 통해 낙오되는

사람들은 스스로 등록금을 해결해야 한다.

아르바이트? 평균 적인 대학생 들의 아르바이트 비용으로는(한국 뿐 아니라 미국, 영국 등)

등록금 을 꿈도 꾸기 힘들다.

그럼 그사람들은 좋은 사립대학 이나 국립대학 은 포기할수 밖에 없고 자신의 주머니 사정에 맞는 학교를 택하기 마련이다.

소위 일류대를 나온 엘리트 들 보다 조건이 떨어지는 직장을 다니고, 훨씬 못 미치는 연봉을 받으면서 나이가 차게 되면 결혼을 하게 되고 아이를 낳게되고,

아이 에게 만큼은 자신의 교육환경을 대물림 하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지만,
자산은 빡빡하고 현실과 타협을 하게 되면 아이의 일류 학교는 자기세대 와 같이 꿈도 못 꾸게 되고...

물론 전체가 다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떵떵 거리면서 살정도로 성공한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그사람들의 전기나 수기등을 한번 이라도 읽어본 사람들은 그런류 의 사람들이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해왔는지 알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운명 을 받아들이고 그 악순환을 반복 하던지, 아니면 힘든 여건에도 성공한 사람들 처럼 피나는 노력을 해서 성공을 하던지 둘중 하나인가.

다른 길은 없나. 인생에서. 꼭 성공과 실패 라는 이분법 만으로 정의가 되는 것일까..

적어도 가만히 앉아서 '이것도 내 운명이겠지' 라며 받아들이고 싶진 않다. 절대로 내 다음 세대 에게 까지 가난함을 물려주진 말자. 그럴바엔 평생 혼자 살것이다.

그 편이 나나 다음세대 에게도 올바른 선택이다.

어느 휴머니스트 의 말 처럼, 아이에게 생명을 주는것 보다 더한 축복이 어딨냐고 말하는 감언이설 에 속지 말자.
불행은 자기 세대에서 마무리를 확실히 져야 한다.

2005년 8월 21일 일요일

표충사 사찰체험기 2.








버스에 올라 탄지 20분 가량 지났을까?
사람이 한두명 씩 오기 시작했다.

11명. 밀양역에서 탄 사람들은 11명 이다. 그리고 시외버스 터미널 에서 4명 정도.
총 15명 인가? 그리 많진 않군.

근데 남자 보다 여자가 많다.
과히 좋진 않다. 그만큼 편하게 지낼수 있는 사람이 적어진다는 것이니까..

어쨌든 표충사로 출발이다.

다시한번 느끼지만 밀양은 정말 천혜의 요양지다. 물좋지. 온통 산이지.
게다가 가는길 마다 보이는 관광지. (밀양은 대부분 관광지가 물놀이와 연관 되어 있다)

밀양강. 강이 저렇게 깨끗한 곳이 있다니..
매일 한강만 보다가 밀양강을 보니 오히려 낯설다.
이게 정말 강인가?

그 강에서 여기저기 수영하고 물놀이 하는 사람들. 낚시꾼들.
평화롭게 주변경치를 살피며 가고 있는데,

“빠앙~”

무슨 덤프트럭 경적소리 인지 알았다. 소리한번 크군.
우리차 (셔틀버스) 소리였다. 승용차가 옆에서 껴들었나 보다.
그러자 안내를 하시는 스님(좀 젊은 스님인듯. 나이는 내 또래쯤? ) 이 한마디 하신다.

“받아버려 저거. 받아버려”

그러자 기사아저씨 왈.
“받으면 나만 손해여..”

이게 무슨 소리지? 스님이 저런 얘길 해도 되는건가?
경건하고 자기수행에 몰두하는 수행자 치곤 농담이라도 좀 심하다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좀 지체되서 였을까.
기사분과 스님이 서두르는 기색이 역력 했다.
15:00 까진 입재식을 마쳐야 하는데, 벌써 55분 이니..

그새 또 옆에서 끼어드려고 하는 승용차.
“빠앙~~~”

하이빔까지 쏜다. 순간 밀려오는 짜증. 경적소리도 소리지만, 스님 또 한마디 하신다.

“어쭈 해보자 이거지?”

당최 이해가 안되네? 무슨 일반인도 아니고 스님이 저런 얘기를 한다는게 말이되나?
물론 계속 가다보면서 저건 스님만의 농담이란걸 깨달았지만.
농담치곤 좀 과격 하다.

드디어 재약산 입산.

기가 막히다. 입구부터 보이는게 계곡 물로 만들어진 작은 호수 라니..

애, 어른 할거 없이 수영복 입고 물놀이 를 하고 있었다.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디카에 메모리 카드를 보충하지 않아서 사진은 약 20방 밖에 못 찍는다.
준비성 없는게 어디가냐 …

입구부터 표충사 까지 걸리는 시간은 대략 20 분.
길 자체를ㄹ 계곡 따라서 만든 것 같다.
20분 내내 계곡, 물놀이 하는사람. 낚시 하는 사람 휴양지, 텐트 등이 보였으니.
게다가 저 맑은 물.
뛰어 내리고 싶다. 담그고 싶다. 온몸을.

드디어 표충사 도착.

스님이 장내 방송으로 얘기한다.

“자 여러분 드디어 표충사에 도착했습니다.”

저 스님은 나한테 찍혔다. 말투하며, 경건하지 못한 행동(스님이란 고정이미지를 확 깨버린 장본인) 등. 설마 저런 스님들만 있는건 아니겠지?
순간 밀려 오는 짜증. 그럼 템플 스테이고 뭐고 없다.
당장 짐싸고 올라가리라.

절에 들어서니 거대한 규모에 놀라고. (표충사는 1,300 년 역사를 자랑하는 절 이다)

표충사 입구중 하나인 사천왕문(四天王門)


그리고 문을 들어서니,


입구에 있는 사천왕 문 을 지키는 사천왕상



엄청난 관광객 수에 놀라고 ( 내 외국인 할거 없이 여기저기 널려(?) 있는 사람 사람들.

….아. 내가 원한건 이런게 아니었는데..
조용하고, 위엄있고, 거기에 있는것만으로 주변 정세에 존재감이 넘치는 그런 곳 이었는데.
현실과 상상의 괴리가 이리도 크다니.
어쨌든 안내에 따라 절 안쪽 으로 들어가니, 일반인 같은데 승려복(?) 같은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우리 보다 먼저 도착해서 옷갈아 입고 기다리던 템플 스테이 족(?) 들이다.
안내를 맡고 계신 보살님 의 지시에 따라 인적사항 등록하고 수련복 받고(아까 템플 스테이 족 들이 입었던 옷이다)
신발 치수에 따라 맞는 고무신 받고, 묵을 사찰을 배정 받았다.

남자들 숙소로 배정 받은 표충서원


묵을 숙소 내부 크기가 예상외로 엄청나다.

수련복으로 갈아입자. 근데 아무리 봐도 황토 찜질방 에서 입는 옷 같은..
입어보니, 사이즈가 안 맞는 것 같다.
밑은 펑퍼짐 하고, 윗도리 는 팔이 짧네? 팔 꿈치에서 조금 더 길었을까?
‘특이하네… 특이해..’
아무튼 수련복으로 갈아입고 집합장소인 영각 으로 모였다.

영각



‘엇. 꽤많네?’

약 40명 정도 되는 인원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가족끼리 온사람도 있고, 연인, 친구. 나 처럼 홀로 온 사람도 꽤 있었다.
그리고 꼬맹이들.

초롱초롱 한 눈 빛으로 모든걸 습득하듯, 뚫어 져라 쳐다보는 아이들. 재잘 재잘..
인원 파악이 끝나고 안내 하시던 보살님이 들어 오셨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여러분이 템플 스테이를 하실동안 안내 및 민원 업무를 맡은
000 입니다.”

“몇가지 간단한 예절, 규칙 등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오늘 시간이 늦어진 관계로 빨리 교육을 마치고 입재식을 해야 되거든요? 협조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사회에서 사복으로 만났으면 상당한 미인이 겠군.’

교육은 대강. 차수( 초보 수련자 들이 걷는 자세)의 설명, 예배의 방법, 각 법당을 드나들 때의 예절. 스님을 만났을 때 취하는 인사 방식 등으로 나뉘어 졌다.

교육을 마치고 입재식이 거행되는 대형법당 (설법전) 으로 이동.
절에서는 수행자들( 우린 초보 수행자들 이다) 은 차수 상태에서 남녀 따로 2열 종대로 움직여야 한다.
불편하긴 하지만, 룰은 룰이다.
왼손은 오른손 위에 가만히 포개고 배꼽위에 올려 놓는다. 그리고 시선은 약간 아래로 고정하고 소리가 안나도록 가능한 사뿐히 걷는다.
이것이 차수의 자세.


이곳이 바로 입재식 을 거행할 설법전



어떤 절에서도 가장 중요시 하는 것이 바로 ‘정숙’ 이다.
이건 수행하는 스님을 위해서건, 우리 같은 수련생 들을 위해서건 모두에게 해당되는 공통점. 일반인 들도 마찬가지.

당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어디서 본듯한 스님이 장삼을 걸치고 서있다.

이게 누구야. 나한테 찍혔던 스님이다.
‘이봐요 스님. 스님은 나한테 찍혔어요. 아무리 근엄하게 나오더라도 스님에겐 별로 신뢰가 안간 다구요’

입재식을 하는 곳은 대형 법당 이었다. 온돌바닥. 반질 반질 하니 매끄럽다.
순간 어린시절 로 돌아가 미끄럼 타고 싶은 충동이 잠깐..

왠걸. 꼬맹이들이 벌써 하고 있었다.

“꺄르르~”
“깔깔”

으.. 나도 저기에 껴들고 싶다. 그렇지만 참아야지. 난 어른이니까.
아이의 부모님이 야단을 친다.

그러자 ‘왜? 도대체 왜 하면 안돼?’ 하는 표정으로 엄마를 쳐다보는 아이들.
곧 이어 시무룩 해진다.
그리고 얼마 안가서 자기들끼리 또 재잘 재잘.

이건 템플 스테이에 참여한 아이들의 똑 같은 패턴이다. 앞으로 도 계속 반복 된다.
아이는 무언가를 시도하고, 엄마는 야단치고, 잠깐 멈추었다가 자기들 끼리 모의 작당(?) 을 하고 다시 시도하고, 엄마는 야단치고, 또 멈추고…

젊은 스님이 들어왔다.

“양말을 안신고 계신분 들이 많은데 사찰 내 에서는 양말을 신어주시기 바랍니다”

나름대로 근엄있게 한 말이었다. 적당히 저음이 섞인.

그러나 ‘스님은 나한테 찍혔다니까요. 스님말은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릴거에요’

물론 난 양말은 신고 있었지만.

곧 이어 스님들이 들어 오셨다. 한분, 두분.

총 다섯명. 음? 가운데 계신 분 에게서 무언가 포스가 느껴진다.
대빵(?) 스님 이신가?
후에 안거지만 그분은 주지스님 이었다.
역시 눈치로 먹고 살아온 30년. 척하면 척이다.

고백하자면 그때까지 여기에 온 나름대로의 소득을 못 건지고 있었다.
물론 아름다운 경치 라던가, 산 입구부터 끝까지 늘어서 있는 계곡들. 시각적인 만족 이야 벌써 한몫 단단히 챙기긴 했지만 진정으로 원한건 이게 아니었다.
2박 3일간 나를 찾아보려 왔었는데, 내면의 나를 좀 찾아보고자.
짧은 일정 안에 무언가 깨달음 을 얻을 리는 없지만, 참선도 하고 명상도 하면서 고민거리 도 좀 해결해보고. 그러려고 왔는데, 앞서 젊은스님 의 행태와 셔틀버스 기사 아저씨의 불친절함. 교통 체증. 예상외로 많은 인원..
이런 것 들 때문에 기분이 좀 저기압이 되있었다.
첫날부터 이렇다니.. 과연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돌아갈수 있을까?

“지금부터 제5기 템플스테이 입재식을 시작 하겠습니다”

젊은 스님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통하여 법당에 울려 퍼졌다.
곧이어 스님들의 소개가 있었다. 머무는 동안 반야심경, 각 법문 강의 를 해주실 00 스님.
호감 있게 생기신 분이다.
사찰안내, 산행안내 등을 맡아주실 00 스님.
그리고 큰스님. 마지막으로 아까 안내를 해주신 보살님.
물론 젊은 스님도..

“자 여러분 삼배 합시다.”

법문 강의를 맡으신 스님이 말씀 하신다.

이어져 들려오는 법당을 울려퍼지는 목탁소리. 염불소리.

‘답은 풀렸군. 그래 이거야’

여태까지 쌓여있던 불만이 한 순간에 날아가고 있었다.
이 소리. 목탁소리 와 스님의 염불 외는 소리.

곧이어 언제 그랬냐 는듯 차분해지는 심신. 목탁 소리에 맞춰 삼배를 한다.
반야심경 합창.
‘그래 이거였어. 내가 온 이유는. 다른건 다 필요 없다. 저 스님들의 네이티브 스피커로 염불 외는 소리만으로 도 충분해.’


다음으로 사명대사 박물관 관람과 표충사 사당 참배를 해야 한다.
나가자.

사명대사 四溟大師 (1544~1610) 역사 시간때 배운 것 중에 생각 나는 거라곤 전란 이후 일본에 사신으로 건너가 외교력을 펼친 끝에 3,000 여 명의 끌려간 동포를 데리고 귀국한 스님 이라는 것 정도 밖에..

‘네고시에이터 였군’

과거엔 훌륭한 스님들도 많았지… 물론 아닌 사람들도 있었지만.


표충사 박물관 전경



안내를 맡아주신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보살님. 무어라고 설명은 하시는데, 마이크 소리가 작아서 잘 안들린다.
들어가 보자.

입구에 들어가자 마자 가운데 에 놓여진 유리관 안에 목조관세음보살좌상 이 보인다


높이 51 Cm, 넓이 30Cm 이 관세음보살상(觀世音菩薩像)은 임진왜란 때 승병장인 사영대사가 진중(陣中)에서 원불(願佛)로 모셨다고 전하여지며, 강화정사(講和政使)로 일본에 갔을 때에도 모셨다고 전하여 지고 있다. 조각수법이 매우 정교하고 아름다우며 삼도가 정연하고 어깨가 낮아 조선전기의 불상양식을 잘 간직하고 있다.



사명대사가 일본에 사신으로 갔을 때 받아온 독특한 모양의 목탁. 그리고 유품들.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나와 이동한 곳이 표충사 사당.


서산대사 (휴정 休靜, 1520~1604 ) 와 기허대사 (영규 靈圭, ?~1592 ) 사명대사 의 영정을 모신 건물이다.



예배를 마치고 나오니 저녁 시간. (5:30 )
과연 저녁은 어떤 것이 나올까. 점심때 밥 2공기나 먹었는데 벌써 배고프다.
아무리 급해도 룰은 지키자. 차수의 자세로 걸어야 한다. 주변을 둘러보니 지키는 사람은 아이들 하고 몇몇 사람 밖에 없다.

드디어 저녁 공양 시간. 안내 받은 곳은 묵고 있는 동안 내내 음식을 해줄 식당(?) 이다.
들어가기도 전에 풍기는 국물 냄새. 이건 무슨 냄새더라?
잔치국수 냄새던가? 맞다 담백한 멸치 국물 냄새.
저녁 메뉴는 국수 였다.


절에서 손수 재배한 배추로 만든 김치, 나물, 손수 빚은 국수 가락, 오이, 김 등. 100% 유기농법 에 의한 순도 100% 자연산(?) 국수. 맛은 어떠냐고? 직접 먹어보지 않고는 그맛 모른다. ㅜ.ㅠ 참고로 가득 채워서 2그릇 싸그리 비웠음.



7:00 시. 저녁 예불 시간이다. 예불을 위해 도착 한곳은 표충사 대광전

대광전 전경. 모든 예불은 이곳에서 한다. 표충사 를 통틀어서 가장 숙연하고 정숙한 분위기 가 풍겨나던곳.



절에 들어가는 방법(?) 은 이렇다. 가운데 문은 절대 이용해선 안된다. 양옆에 문을 이용하되, 남자는 오른쪽 여자는 왼쪽 문으로 들어간다.
신을 벗고 오른발을 먼저 법당 안으로 들여놓고 나머지가 들어온다.
문턱은 절대 밟거나 앉아서는 안됨.

이런 규칙들은 누가 만들었을까. 오래전에 스님들이 만들었겠지? 암튼 절에 온 이상 나도 수련자 이다. 지켜야 할건 지키자.

좋아하는 목탁, 염불 소리에 맞춰 예불을 드리고 난후, 타종식 이 있었다.
2인 1조가 되어 거대한 목종 을 흔들어 종을 친다.


힘을 주어 때리는 건 줄 알았는데, 흔들었다가 가만히 놓기만 하면 된다. 너무 세게 때리면 오히려 쉽게 부서진 다는 스님의 말.
그말을 들으니 힘조절 에 신경이 쓰일수 밖에. 살며시 5번에 준비 과정 후에 목종을 놓는다.

“뎅~~”

오늘의 마지막 일과인 사찰 예절 습의 및 참선 연습 과정이 남았다.

사찰 예절을 배울게 더 있나?

다시 설법전 으로 이동.

가장 까다로운 사찰 예절 이었던 발우공양 에 대한 습의.


발우란 음식을 담는 그릇을 말한다. 스님들의 식사를 발우공양 이라함.

사람 앞에 놓여진 각자의 발우들. (보자기에 쌓여있음)

푸는 방법부터 먹기까지 다 과정이 있다. 그중에 스님이 가장 강조하는 것은 바로 ‘정숙’ 이었다. 나무 그릇인데도 불구 하고 그릇끼리 부딪히면 ‘딸그락’ 소리가 조용한 법전 안에 울려 퍼진다.

누누이 강조하는 스님의 ‘묵언수행’ 절에 있는 동안은 말을 아껴라.
말은 여러분이 사회에 있을 때 충분히 할만큼 한다. 절에 있을동안 만이라도 말을 아끼며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라.

그러는 와중에도 처음보는 발우가 신기했던지 아이들 끼리 돌려보고 엎어 도 보고 난리가 났다 옆에서. ^^

점잖게 꾸짖는 스님의 한마디.

“조용히 하거라.”

와우. 효과 만점. 아이들 엄마가 말리지 않는데도, 단번에 얌전해 지는 아이들.

아침 발우공양 에 대한 사전 습의 만 1시간 가량이 지났다.

‘뭐가 이리도 까다롭지’

겨우 밥 한끼 먹는데 이렇게 까다롭게 먹어야 되나? 외우기도 힘드네…

외우기 힘든거는 크게 포인트를 몇 개 정하여 해당 하는 포인터만 외우면 된다. 나머지 세부적인 것들은 포인터에 따라 나오기 마련.

암튼.. 드디어 습의 완료.

시간이 지체되어 예정된 취침 시간 보다 30분 가량 늦었다.

절 입구를 폐문하니 그 많던 관광객들이 한명도 보이지 않는다. 이제는 온전히 절의 시간.
스님의 시간, 우리들만 의 시간이다.

내일 새벽에 일어나 예불을 하려면 일찍 자둬야 한다. 세면 도구를 챙겨 샤워장 으로 직행.
샤워장 안엔 약 5~6 개의 샤워기 가 있었다.

나머진 일반 수도꼭지. 잽싸게 해야지.

컥. 물 온도 조절이 지 멋대로다. 이 럴바엔 아예 찬물로 하는게 낫지.
계곡 물을 끌어다 쓰는 것이기 때문에 물의 체감온도는 얼음물 처럼 차갑다.
그래도 냉, 온수 섞어서 하는 것보단 낫지.

“어푸푸~”

한명이 찬물로 하자 나머지 사람들도 찬물로 씻기 시작한다. 나중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푸푸~”
“앗! 차거~”

샤워를 마치고 숙소인 표충서원 으로 돌아와 보니, 이부자리가 다 깔려 있었다.
누구? 안내를 맡고 계신 보살님 이 하셨나.

일찌 감치 자자. 새벽에 일어나려면. 벌써 예정된 취침 시간이 한발 늦었다.
그러나 피곤해도 잠자리가 변하면 이상하게 잠이 잘 오지 않는다.
억지로 잠을 청해야지.

“일어나십시오”
딱.딱.딱….

“일어나십시오”
딱.딱.딱….

스님이 목탁 소리와 함께 기상 소리를 외치고 있었다.
응? 뭐야 벌써 새벽 3시 인가? 말도 안돼. 누운지 얼마 안되는 것 같은데..

어휴 정신없군. 다들 졸린 눈으로 이불 개고, 첫 일정인 탑돌이 와 예불을 하러 나갔다.
씻어야 하는데.

대강 씻고 모인 곳은 108 예배를 하기 위한 대광전.
스님들은 벌써 준비 다 마치고 목탁을 두드리고 계셨다.

몇몇 지각생들 때문에 매일 같이 하는 예불 시간을 늦출순 없으니, 빈 자리가 있음에도 예불을 시작했다.

바닥에 놓여 있는 방석. 예배할때 무릎을 꿇을 자리이다.
드디어 108 예배 시작. 주어진 예문 (108 예배문) 에 맞추어, 스님의 목탁소리에 맞추어 예배를 시작한다.

절을 할 때 목탁을 두드리면 일어나는 신호이다. 반대로 서서 합장을 하고 있을 때 목탁을 두드리면 절을 하라는 신호이다.

모두들 목탁 소리에 맞춰 108 예배를 하기 시작한다.

50번째 였었나? 등에 땀이 맺히기 시작하고, 다리가 아파오기 시작 했다. 그렇게 어렵게 안봤는데..벌써부터 힘들다니..
아직도 해온만큼 더 절을 해야 한다.

70개째, 이제는 일어 나는 게 좀 버겁다. 옆에 아저씨 한 분은 절할 때 팔을 아예 바닥에 대놓고 있다.
50대 중반의 한 아저씨는 예문을 지극 정성으로 외우신다. 이미 108 예배를 경험 하신 분인듯.

80개째 를 넘어서니 하나,둘씩 사람들의 예문 외는 소리가 조용해 지고 있었다. 아이들은 포기하고 엎드려 자는 애들도 있고. ^^

아닌게 아니라, 조금씩 고통이 밀려왔다. 예문 외는 소리는 목구멍 까지 올라온 신음을 참느라 읽을 엄두도 못냈다.

99개째 인가. 100개 이던가. 절을 하고 엎드린 상태에서 스님이 목탁을 쳐야 할 타이밍인데 안 치신다. 계속 엎드려 있었다.

‘살 것 같군..’

수행원 들을 위한 배려 였을까. 다음 예배 부턴 절하고 나서 약간의 텀을 두고 목탁을 두드 린다. 덕분에 우린 엎드린 자세에서 조금이나마 쉴수가 있었다.

마지막 예배. 드디어 끝났다. 마치고 쉬어야지. 절을 올리고 마지막으로 합장을 하고 반배.
다음 5분간의 휴식 시간. 화장실 가려면 지금 가야 한다.

[#IMAGE|c0025543_1785173.jpg|pds/1/200508/21/43/|mid|2048|1536|pds#]

108 배를 마치고 기념으로 한장.




5분간의 휴식시간이 끝나자 참선 시간이 주어진다. 자세부터 하나씩 스님이 가르쳐 주는데,
먼저 정좌로 앉은 다음 오른발이 밑으로 왼발을 오른발 위에 가만히 내려놓는다.
다음 손은 편한 자세로 다리 위에 올려 엄지와 검지를 이용, 반원을 만들어 연결 한다.
허리는 일직선으로 피고 고개는 약간 숙이되, 시선은 정면을 향하여..

너무나 불편한 자세. 이 자세를 어떻게 유지 하지? 20분간 참선 시간이 주어 졌다.

[#IMAGE|c0025543_17573219.jpg|pds/1/200508/21/43/|mid|640|480|pds#]

참선중 (절대 졸지 않았음....Orz)


순간 고요한 적막. 누가 먼저라 할 것 도 없이 눈을 감는다.
10분이나 지났을까. 저려오는 다리. 슬며시 눈을 떠 옆사람을 보니 멀쩡한가 보다. 미동도 않는다. 벌써 다리 풀긴 창피한데…

한번 저려오기 시작하니 걷잡을수 없이 번진다. ‘미치겠군’ 어쩔 수 없이 다리를 바꿔 앉는다. 오른발을 위로. 주변 사람들을 보니 그래도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이 꽤 있다.

참선 자세가 익숙한가?
20분의 참선 시간을 마치고 밖으로 나와 아침 체조 및 몸풀기 수행.

[#IMAGE|c0025543_1794270.jpg|pds/1/200508/21/43/|mid|1434|1075|pds#]

스님의 물구나무 시범은 사람들의 박수갈채 를 받았다



30분 정도의 아침 체조 시간을 마치고 세면 시간이 돌아왔다.(딱히 세면 시간은 없었으나 자유 시간이 주어졌으니 이때 세면)

내려가는 중에 스님들이 토깽이 보살(암컷 이란 말이냐..) 이라고 부르는 토끼 등장.

사람을 무서워 하지 않네? 가까이 가도 그냥 한걸음 물러 설뿐 일부러 도망가진 않는다.

단 숨에 사람들의 이목을 몽땅 끌어들인 토끼. 특히 아이들이 주변으로 몰려서 만지고 먹이주고 좋아 한다. ^^

[#IMAGE|c0025543_1711177.jpg|pds/1/200508/21/43/|mid|450|600|pds#]

탑돌이( 합장 자세로 둥그런 원을 만들어 탑을 돌며 예불)탑인 삼층 석탑.



드디어 준비운동(?) 을 마치고 본연의 임무이자 하루 중 제일 기대하는 시간인 식사시간.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설법전 으로 이동.

그런데. ‘이게 아닌데?’

난 실제로 절에 있는 스님과 같이 식사를 하게 될줄 알고 있었는데, 안내를 하시는 스님 외엔 우리 뿐이 없었다.

‘아~ 이런. 이건 아닌데. 실제 스님들하고 똑 같은 자세로 같은 곳에서 차별 없이 발우공양 을 하고 싶었다고!!!!!’

어쩔수 없지. 기대보단 못 하지만 배고픔이 먼저다. ㅜ.ㅠ

어제 훈련 받은 순서 대로 발우를 꺼내놓고, 바닥에 쌓는 순서대로 놓은 다음, 공양을 받는다. 받는데도 순서가 있어, 먼저 밥을 나누어 주는 스님이나 수련생이 오면 합장 한다음, 밥 그릇 에서 밥을 푼다. 다음 밥을 머리위로 올려 예를 갖춘다음, 밥 한테 합장.

뭐 이렇게 먹어야 하는 이유는 모르겟지만 일단 로마에 오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니까..
그 다음 국이 오면 국을 퍼서 가져오고, 다음 반찬. 이런식 이다.

[#IMAGE|c0025543_17151170.jpg|pds/1/200508/21/43/|mid|1577|1183|pds#]

발우공양. 공양을 다 마친 상태의 사진. 밥이 담긴 발우를 ‘어시 발우’ 라 한다. 나머지는….까먹었…



공양을 다 받고 스님의 신호( 긴 대나무 막봉 같은 걸로 손바닥을 내려치면 탁! 소리가 나는데 예상외로 제법 소리가 크다) 가 떨어지면 밥을 먹는다.

식사 시간에도 중요한 것은 ‘절대 정숙’ 이다. 후루룩 이라던가 쩝쩝 같은건 용납이 안된다.
한번에 하나씩 (어시발우 를 할땐 어시만, 반찬 발우를 들때는 반찬 만, 국물 을 떠 먹을땐 국 에만 수저 및 저분이 있어야 한다) 들고 조용히 그러나 허겁지겁 (^^) 먹는다.

음식은 남겨서는 절대 안된다. 반찬 중에 김치 쪼가리나 단무지 하나를 남겨, 그걸로 물과 같이 자신의 발우를 깨끗이 닦아야 한다.

단무지 하나를 남긴 것 외엔 게눈 감추듯이 음식을 비운 후, 얌전히 스님의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들.

“탁!탁!”

신호다.

처음에 어시 발우부터 깨끗이 닦은후, 다음 국 발우를 닦고, 그다음이 반찬 발우. 그리고 마지막 으로 닦은 김치 혹은 단무지를 먹는다. 닦을 때 쓰여진 물도 깨끗이 마신다.

마지막에 퇴수를 해 가는데 퇴수물 에는 정말 고추가루 하나라도 들어 있으면 안된다. 실제 스님들은 발우공양 시 양념가루 하나라도 남아 있으면 호되게 혼난다고 한다.

퇴수 해간 물은 아귀들이 먹는데 아귀들은 고추가루 크기의 건더기가 있어도 삼키는데 애가 있다고 한다.
‘잉? 근데 아귀가 뭐지? 생물인가?’
아무튼 교육 받은 대로 깨끗이 발우 를 닦은후 처음 왔던 거와 같이 천으로 감싸 묶는다.


아침 발우공양 을 마친 후 주지스님 과의 환담 을 위하여 영각으로 이동.

[#IMAGE|c0025543_1717498.jpg|pds/1/200508/21/43/|mid|1434|1075|pds#]

가운데 앉아계신 분이 표충사 주지스님.



30분 간의 다도 및 주지스님 과의 환담을 마치고. 등산.
프로그램 에는 ‘폭포아래 참선’ 이라고 되어 있다.

등산화 로 갈아신고, 모자 및 수건을 챙기고 등산행.

나중에 또 얘기하지만 ‘반드시 또 온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경관.

재약산 은 들어보지도 못했는데, 흙 속의 진주 라는게 이럴 때 쓰이는 건가. 아니면 우리나라 명산의 기준이 어떻게 되길래.

하긴 재약산도 명산 중 에 하나긴 하지만, 재약산 의 경치는 두번 다시 잊지 못할 것 이다.
등산로 가 험난해서 사람들 눈에 띄지 않아서 였을까.
거의 원형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자태. 마침 몇일 전 까지 쏟아져 내 렸던 비 때문에 계곡 마다 물이 넘쳐 나고 있었다.

[#IMAGE|c0025543_17203115.jpg|pds/1/200508/21/43/|mid|998|1331|pds#]

재약산 등산 도중 1차 휴식처 에서 찰칵. 산 전체가 이런 계곡 들로 이어져 있다. 물맛 또한 기가 막히다.


간식거리로 절에서 나누어준 오이, 초코파이, 얼음 물, 그리고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은 손으로 만든 주먹밥. 중 오이와 얼음물로 허기를 좀 채우고 다시 등산 행.

등산로 는 그리 힘들진 않았으나, 험난한 곳이 꽤 있었다.

천길 낭떠러지 옆에 올라와 있는 거대 한 바위. 그곳에 보이는 재약산 볼거리중 하나인 흑룡 폭포.

[#IMAGE|c0025543_1724714.jpg|pds/1/200508/21/43/|mid|778|1037|pds#]
조금 더 올라가자 시원하게 물줄기 가 떨어지는 곳이 보인다. 흑룡 폭포 위쪽 인가. 여기서 2차 휴식.

[#IMAGE|c0025543_17261736.jpg|pds/1/200508/21/43/|mid|1331|998|pds#]

폭포참선 중(?) 인 아저씨, 아주머니. 날씨가 워낙에 좋아 온몸을 적시고도 금방 옷이 마른다.



[#IMAGE|c0025543_17282751.jpg|pds/1/200508/21/43/|mid|1037|778|pds#]

참선중인 스님. 이때 불교 TV 에서 템플 스테이에 관한 취재 를 나와 카메라 맨 들도 동행.



20분간 참선 할 예정이라고 했는데, 20분을 훌쩍 넘기고도, 스님 일어날 생각을 안하신다.
카메라가 있어서 일까..

덕분에 사람들이 눈을 뜨고도 계속 앉아 계시는 스님을 보자, 다시 얌전히 눈을 감는다.
와중에 그냥 대놓고 누워서 자는 사람들도 있다.
아이들은…. 뭐 애들이니까..

약 40분 정도 참선시간을 가진후, 다시 등산행이다. 산이란 일단 정상을 밟아야 하는 법.
올라가자. 인간 이진호 오늘도 걷는다.

정상에 거의 다왔을 무렵. 밧줄과 나무로 만들어진 외나무 다리 발견.
그 앞에 놓여진 층층폭포.

[#IMAGE|c0025543_17305646.jpg|pds/1/200508/21/43/|mid|922|1229|pds#]

흑룡 폭포와 쌍벽을 이루는 층층 폭포. 몇일 전 비를 내려준 하늘에게 감사할 뿐이다. 이런 경관을 볼수 있게 되다니. 럭키!



“여러분들 배고프시죠? 여기서 점심 공양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얼마나 기다려왔던 말이냐.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도시락 에서 주먹밥을 꺼내든다.

[#IMAGE|c0025543_17324872.jpg|pds/1/200508/21/43/|mid|1536|1152|pds#]

보기엔 이렇게 생겼어도. 맛은 최고임. 무슨 참기름 같은 걸로 간을 친 것 같았는데. 암튼 원츄!


저렇게 생긴 주먹밥 2개를 한입에 먹어치우고 나서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는데.

“이제 곧 정상입니다. 그런데 오늘 미리 내려가실 분이 있죠? 기차출발 시간이 다 되신분 손 한번 들어보세요”

1명,2명….3명 뭐야 꽤 많군. 10명이 넘는 인원이 중간에 내려가야 한다.
‘산에 올라왔으면 정상은 밟아 봐야지’

아무튼 내려 간사람 들은 내려가고 나머지 사람들은 또 등산 행.
밥도 먹었겠다. 힘이 펄펄…나는게 아니고 졸립다. 눈이 감겨. 아~ 이놈의 식곤증.

얼음물 한잔 마셔야지. 후루룩

자 계속 걷자. 걸어야 한다.

드디어 정상 도착. 기념 촬영 후 하산 시작.
올라갈 땐 몰랐는데 내려가는 게 이리 힘들던가. (등산은 원래 내려가는 게 더 힘들다. 등산 매니아 이신 아버지가 했던 말.)

게다가 좁디 좁은 길. 간혹 축축히 젖어있는 진흙탕 길. 여기 저기 신경쓰면 서 발을 딛다 보니 피로가 더 해지는듯 하다.

급기야 내 또래인 젊은 사람들도 한 둘씩 쉬어가는 부류가 늘어나기 시작.

그럼에도 제일 앞에서 이끌고 계시는 스님은 아직도 팔팔 하시다. (당연한 건가..)
성큼 성큼 걷는 저 보폭. 누가 말 시키면 호흡 하나 흐트러 지지 않고 뚜렷이 말을 한다.
역시 산에 사는 산사람(?) 답군.

뭐 매일 같이 다녔을 테니 아무래도 건강할 수 밖에.
드디어 절이 보인다. 사람들 하나 둘씩 쓰러지고. 너나 할 것 없이 샤워장 으로 직행.

샤워를 마치고 각자의 숙소로 돌아가. 1박2 일 예정인 들을 위한 회향식. 에 참여 해야 한다. 시계를 보니 약 30분 정도 남았다.

아니나 다를까 한둘씩 털썩. 털썩. 코 까지 골면서 자는 사람까지.. 피곤하긴 하겠지.
애들은 아직도 쌩쌩 하다. 역시 건강해 보여서 좋군.
30분 정도 꿀맛 같은 낮잠 후 회향식이 이루어 지는 법전 에 들어서는 순간.
‘아니 이게 어케 된 일이지’

수련복을 입고 있는 사람은 나 혼자 뿐 이었다. 다들 입산 할 때의 사복 으로 갈아 입은 상태. 안내를 맡으신 보살님 에게 물어보니,

“2박 3일 예정이던 분들이 전부다 취소를 하셨어요.”
“네? 왜요?”
“글쎄요 저희도 이런 적 은 처음 인데, 산에 갔다 오신 분들이 다리를 삐고, 어디가 긁히고, 다 치신 분들이 많아서…”
“그럼 전부다 지금 내려 간대요?”
“네.”
“아니, 그럼 저 혼자 남게 돼는 건가요?”
“네. 그리고 나머지 한 가족 분들이 계신데, 그 분들은 숙소에서 자고 있느라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어요”
“혼자 해도 되나요? 사찰 체험?”
“프로그램 에 따른 일정 등 은 못 합니다. 개인 적으로 머무시 려면 그냥 쉬시는 일 밖에..”

‘허…그깟 산에 한번 올라갔다 왔다고 캔슬 이라니.. 사람들 참..’

어쩔수 없다. 프로그램 도 더 이상 불가능 하다고 하니, 이 사람들과 같이 내려가는 수 밖에. 혼자 머무 는 것도 잠깐 생각해 봤으나, 역시나 무리 였다. 아직은 좀… 두려운가.

“그럼 저도 어쩔수 없군요. 옷 갈아 입고 올께요.”

아쉬운 회향식. 일정대로 2박을 머물렀으면 더 좋았을 테지만, 1박으로 만족 하자. 그래도 많은 것을 얻었다.

앗차. 돌아가는 표를 예약을 안 했는데..어차피 밀양역 에서 입석표 를 사야 겠군.
4시간 가량 서서 갈수 있을까. 과연. 이몸으로..

밀양역 에 도착 하여 열차를 알아보니 5:19분 1좌석 남 는게 있었다.
문제는 새마을호 특실. 가격이 35,700 원. 가격이 문제냐 집까지 어떻게 서 가려고!!!

“그거 주세요”

원하진 않았지만 예정된 일정보다 줄이게 되었고. 비용도 예상보다 과다 지출 되었다.



지출내용
비용


집(개봉) -> 영등포역 택시비
4,700


김밥 2줄 , 생수 1
3,000


과자
1,000


시사저널 1
3,000


영등포 -> 밀양 ( 새마을 )
31,000


밀양역 -> 밀양 대학교(버스)
800


음료수
1,000


점심 (불고기 백반)
4,000


PC 방 + 음료
1,600


염주 팔찌
2,000


상행 열차표( 새마을호 특실)
3,7500


편의점 커피
1,500


피씨방
1,000


생수
500


원두커피 (기차안, 리필용)
3,000


합계
93,800



그래도 얻은 것이 있었기에. 뭐 밑진 장사는 아니다. ^^

나름대로 값진 경험을 하게 된 템플 스테이 였다. 1000 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곳. 종교를 떠나서 역사로 서의 가치도 한몫 단단히 하는 산 역사 교과서.

실제로 템플 스테이 참가자 중 기독교, 천주교 등의 타 교인들도 꽤 있었다.
떠나 오면서 마음속으로 다시한번 다짐했다.

‘꼭 또 와야지..’

2005년 8월 18일 목요일

표충사 사찰체험기 1.

내용이 좀 길어서 올리는데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2편으로 나누어야 할것 같군요. 우선 1편 만 올립니다.

04: 20 분. 여행 때문인가 잠이 안온다.
덕분에 5:00 에 맞추어 놓은 시계를 끄고 일어났다.
음. 이것저것 챙기려면 일찍 일어나야지.
어디보자. 배낭, 속옷, 세면도구, 모자 2개, 비상용 렌턴, 필기도구, 휴대폰, 여유분 배터리
음 됐군. 가만 있어보자. 뭐가 빠진 것 같은데..
아! 디카. 반드시 챙겨야 될걸 까먹을뻔.
오케이 준비완료. 몇시지?

4:50 분. 일어서자. 5:59분 기차니까 역에 30 분 전에는 도착해야 한다.
근데 이 시간에 지하철이 다니나?
첫차가 아마 5:10 ~20분 정도. 버스도 다닐리가 없다.
결국은 택시군.

“택시!”
“아저씨, 영등포 역이요~”
“어디 놀러가시나 봐요?”
“예”
“좋으시겠네”
“하하 예”

집에서 영등포역 까지 차 안막히면 10분~15분 거리.
나와봤자 2,3000 원 나오겠지. 하고 미터기를 보는 순간
“잉?” 4,700 원.

올라서 그런가? 아님 지금시간대 에도 할증이? 그건 아닐테고 우와 많이 올랐나 보네.
머 놀러가는 길이니 이정도 가지고 기분 상하지는 말자.

쓸땐 써야지.
영등포 역전에 내리는 순간 퀘퀘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이건. 익숙한 냄새인데.
거렁뱅이 냄새. 케케 묵은 지린내와 발냄새, 땀냄새 등.

‘예전에도 이랬었나?’

게다가 조금 더 역전 앞쪽으로 가보니, 엄청난 숫자의 노숙자들 (예전엔 이렇게 까진 아니었는데.)
그중 한 할머니가 술에 취해서 세상을 상대로 욕지거릴 한다.
동정심. 불쌍해. 저들도 예전엔 저 마다의 꿈과 희망이 있었을 텐데, 왜 저렇게 됐을까.

역전 입구부터 실내까지(매표소 까지) 죄다 노숙자 판이었다. 엄마를 따라온 한 꼬맹이가
한 노숙자를 가만히 응시한다.
저러면 안될텐데.. 반히 쳐다보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버럭! 고함 지르지 않을까?
다행히도 노숙자가 반대로 돌아눕는다.

매표소 앞.

“인터넷 예매 발권 어디서 해요?”
“신분증 주세요”
“손님. 5:59 분 새마을호 우리역 에서 밀양역 까지 맞으십니까?”
“네”
“여기 있습니다. 좋은 시간 되십시오”

새마을 호는 예전 군대 제대하고 부산에서 친구따라서 전기공으로 일할 때 이후론 처음이다.
그때 부산에서 영등포 역 까지 4시간 좀 넘었으니, 그것 보단 덜 걸리겠지.
표를 보니 3시간 30분. 양호 하다. 너무 일찍 가서 문제지만.
난 항상 준비성이 없어서 탈이다.

8월 13~15일 템플 스테이 하기로 마음 먹었으면 최소한 일주일 전에는 예약을 마쳤어야 했다.
이틀 전에 부랴부랴 하다니..
그것도 겨우 1자리 비는 것 간신히 예약 성공.

‘그래도 예약한게 어디야’

2005년 8월 16일 화요일

다녀왔습니다.

잊지못할 추억이 되버린 사찰체험.
비록 일정은 중간에 줄어 들었지만,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지금 수기 작성중이니 완성되는 대로 올리겠습니다.
그럼..

2005년 8월 13일 토요일

템플 스테이

머리도 식히고 새벽 산공기도 맡을겸 2박 3일 일정으로 경남 밀양 표충사 로 템플 스테이 다녀 옵니다.다녀와서 뵈요~

2005년 8월 11일 목요일

아폴로 13호



1970 년 4월 11일, 3명의 우주비행사는 발사대로 출발하였다. 그들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363피트 높이의 새턴5 로켓 꼭대기까지 올라 갔다.

그리고 소형 우주선(사령선) 에 올라탄 다음, 안절벨트를 매고 이륙 준비를 했다. 그들이 오른 비행선은 바로 아폴로 13호 였다.

오후 1시 13분.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었고 로켓 엔진이 돌아갔다. 불꽃이 뿜어 나오면서 온 땅이 진동했다. 다음 순간, 앞쪽에 소형 달 착륙선을 실은 새턴5 로켓이 굉음을 내며 하늘로 발사되었다. 우주선은 4월13일, 달 중력권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우주선의 안전은 비행사들만의 몫이 아니었다. 지상에 남은 전문가 들과 비행사들의 완벽한 공조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비행사 들과 특수 비행 통제실의 전문가들은 고도의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다.

아폴로 13호가 발사된지 3분이 채 못되어 새턴 5 로켓이 분리되었다. 우주비행사들은 두번째 단계의 5개 엔진이 점화된 것으로 알았지만, 잠시 후 통제실에 중앙 엔진이 점화되지 않았음을 알리는 비상등이 켜졌다.

비행사들은 통제실의 명령을 기다렸다. 몇분이 지난후 네개의 엔진만으로 달까지 항해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그후 이틀은 거의 완벽했다. 사실은 역사상 가장 순조로운 비행 중 의 하나였다. 통제실에 있던 한 전문가는 너무 심심해서 하품이 난다고 농담할 정도였다.

지구에서 2십만 마일(달까지 4/5거리) 을 날아간 셋째 날 오후, 우주선의 산소 탱크 중 하나가 폭발하여 산소가 새기 시작했다.

'승무원 경보등' 이 켜지면서 우주선이 심하게 흔들렸다.
"통제실! 응답하라. 문제가 발생했다."

그들은 아주 심각한 문제에 봉착해 있었다. 우선 사령선에서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겨우 15분 뿐이었다. 우주선 앞 쪽에 붙어 있는 달 착륙선으로 빨리 옮겨타지 않으면 생명이 위태로운 순간이었다.

달 착륙선은 생명유지 장치와 동력 공급장치가 설치 되어 있었다. 하지만 2명만이 탑승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비행사 한명은 옮겨탈 공간이 없었다. 더군다나 달 착륙선 으로 옮겨타더라도 비행가능 시간은 하루 반나절 뿐이었다. 하지만 지구까지는 적어도 사나흘이 걸리는 거리였다.

게다가 외장 벽도 얇고 난방 장치도 없었기 때문에, 달 착륙선은 지구 대기권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결과적으로 사령선의 엔진을 멈추고 연료와 산소를 아낀다음 지구로 다시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통제실은 대책을 마련하느라 분주했다. 우주비행사들이 지구로 다시 돌아올수 있는 방법은, 달을 선회하다가 중력을 이용하여 지구를 향해 우주선을 '슬링쇼트(Y 자 모양의 고무줄 새총처럼 급속히 튕기게 하는 주행기술 - 역자주)'
시키는 방법 뿐이었다. 만에 하나 실수를 한다면 (만약 우주선의 분사 제어 로켓이 제때에 발사되지 않으면) 비행선은 궤도를 4만마일 이나 벗어나, 영원히 지구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었다.

다행히 그들의 계산은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 분사 제어 로켓이 정확하게 발사되었고, 비행사들은 지구로 향할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연료가 떨어지면서 달착륙선의 온도가 급격히 떨어졌다. 식량과 물도 부족했다.

한 비행사는 심하게 멀미를 했다. 모두가 수면부족으로 기진맥진해 있었다. 경보장치는 고장이 났고, 산소가 부족해 이산화 탄소 수치가 위험 수위에 도달했다. 달 착륙선의 에어 필터가 막혀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비행사들의 생명을 또 다시 위협했다. 다행히 통제실에서 는 이문제를 대비하고 있었다. 마분지, 양말, 비닐 봉투, 테이프, 그밖에 우주선에 있는 잡동사니 들을 모아 임시 에어 필터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을 비행사들에게 가르쳐 주었다. 결과는 대 성공 이었다.

이제 가동을 중지한 이후 거의 얼어붙다시피 한 사령선을 재가동 해야만 했다. 사령선을 가동해야만 지구 대기권으로 다시 들어갈수 있었기 때문이다.비행사들은 통제실의 지시에 따라 무사히 수리를 마쳤다.

지구에 가까워지면서, 지난 나흘동안 그들의 '생명선' 이나 다름 없었던 우주선 후미의 서비스 모듈과 앞쪽의 달 착륙선을 떼어내 버려야만 했다. 서비스 모듈을 분리 시키자, 모듈이 폭발하며 산산이 부숴졌다.
사령선도 심하게 진동했다. 마치 우주선 전체가 폭발할 것만 같았다.

전 세계가 아폴로 13호의 지구귀환을 지켜 보았다. 우주선이 대기원 으로 들어오면서, 4분동안 통신이 두절되었다.
다음 순간, 파란 하늘에 두개의 주황색 낙하산이 떨어지고 있었다. 잠시후 헬리콥터가 날아와 바다에 떠있는 비행사들을 구조했다.

'너만의 명작을 그려라' - 마이클 린버그- 유혜경 역 182P

나사(NASA) 는 아폴로 13호를 '성공적인 실패' 라고 부릅니다. 모든사람이 힘을 합쳐 조종사들을 구해냈기 때문 입니다. 그후로 14,15,16...호 를 발사할때 까지 그들은 포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절망적이야", "더 이상은 예산을 줄수없네" 라고 하는 미 의회의 발언들도 그들을 멈추진 못했습니다. 저자인 마이클 린버그 는 인간은 누구나 역경에 처해 있을때 뛰어난 순발력과 지혜를 발휘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누구나 인생의 한번은 역경을 걷는날이 옵니다. 중요한건 역경이 닥쳤을때, 포기하느냐, 끈기 있게 헤쳐 나가느냐 인것 같습니다.

너만의 명작을 그려라
마이클 린버그 지음, 유혜경 옮김 / 한언출판사
나의 점수 : ★★★

독실한 크리스챤 인 저자가 반평생 동안 성인, 위인들의 명언들을 모아놓은 집합서.

2005년 8월 10일 수요일

세대차?


일요일 인가..?

SBS 에서 가요 도전 1000곡 인가. 연예인들 나와서 노래를 선곡한다음 따라 부르는 프로그램 있죠?

가족들과 같이 보고 있는데, 이쁘장 하게 생긴(?) 여자 한명이 나와서 노랠 부르는데 정말 잘 부르더군요.

노래 도 하나같이 트로트만 걸리던데, 창법이 이미자 (모르신 다면 GG 입니다..) 씨 창법하고 똑같더라고요.

"아니 누구지? 노래 잘부르네." -저-

"몰라?" -동생-

"누군데? 모르는데..?"

"...근 몇년간 가장 잘나가는 여자 가수를 모르다니. 할말이 없다....."

"누군데 쟤가?"

"린(Lyn) 몰라 린?"

"린? 트로트 가수냐?"

"-_-"

"아니, 창법이 완전 트로트 가수 같은데, 이미자 창법이야 저거~"

어느 순간 부터 발표되는 가요들이 다 거기서 거기 같고, 장르도 다 비슷비슷, 가수들도 다 거기서 거기 라는걸 느끼고 나서 가요를 접하지 않은 지가 한 몇년 되는것 같군요.

그런데, 천성이 음악을 좋아하는 편이라 그때 까지 채워 왔던 가요의 공백을 메꾸기 위해서 다른 장르 에 눈길을 주기 시작 했습니다.

그래서 관심을 가진게 classic 과 jazz 입니다. 역시 사람은 부딛혀 봐야 깨닫더군요. 그 전에는 classic 이나 jazz 하면 마냥 졸린, 따분한 음악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면서 들어보니 왜 몇백년 씩이나 전통을 지키면서 사람들이 좋아 하는지 약간이나마 알것 같더라고요.

전 처럼 익숙한 것에만 매달리고 다른것에는 배타적으로 생각했었다면 지금 제가 가장 좋아하는 피아니스트인 Frank Mills 나 재즈뮤지션 인 Chuck Mangione 같은 사람들의 주옥 같은 곡 들을 몰랐을 테죠.

사람은 다들 저 마다의 관심의 영역이 있습니다. 영역 외의 것들은 보게되도 무심코 지나쳐 가거나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버리고 말지만 관심의 영역 내 에있는 것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탐구하게 되고 공부하고, 지적 호기심을 채우려 노력 합니다.

동생과 저는 세대차 가 아니라 관심의 영역이 서로 약간씩 틀린것 뿐입니다.

p.s : 이거 보고 친구가 한마디 하는군요. "그게 바로 세대차야 임마 뭘 그리 어렵게 생각해?"
........Orz

2005년 8월 8일 월요일

Welcome To 동막골




가족이랑 같이 가서 봤습니다. 전쟁 이라는 무거울수 밖에 없는 소재를 중간중간 코미디를 섞어 지루하지 않게 (중간에 더러 지루한 면도 있지만) 만든영화 였습니다.

그러나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은 좀...(2시간 20분 인가 그렇습니다)

기억에 남는 부분은 강혜정의 신들린 듯한 연기 였습니다. 정말 놀랍더군요.
데뷔 한지 얼마안되는 사람의 연기력 이라곤 도무지 볼수가...

또 한가지는 자연의 아름다움 입니다. 영화 상영 내내 강원도 동막골(꼭 동막골이 아닐수도 있겠죠? 헌팅한 장소 일테니..) 의 자연풍경은 절로 미소가 나오게 만들더 군요 ^^

어머니도 재밌었다고 하시더라구요. 가족끼리 가셔도 괜찮을듯.